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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카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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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뺨 2013. 3. 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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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카스테라의 냉장고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상태가 좋지 못하다. 이는 우리가 알번적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의 역할-조용히 음식물들을 냉장하는-에 충실하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시끄러운 소리를 '나'는 냉장고의 결함이라든가, 고장의 측면으로 보지 않는다. 시끄러운 소리는 고독한 나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를 단호하게 드러내는 강한 발언권이기도 하다. '나'는 냉장고의 큰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마음을 먹고, 냉장고에 대해 냉장고의 역사에 대해 생각한다. 이 때부터 냉장고는 새로운 사용법을 부여받고, 물리적인 사용이 아닌 상징화 된 기호로서의 냉장고로 바뀐다. 냉장고는 더 이상 음식이 부패하지 않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들을 보관하거나, 부패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소중하거나, 해악한 것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나'는 단지 냉장고 안에는 소중하거나 해악한 것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학교도, 미국도, 신문사도, 오락실도, 100% 해악한 것도 100% 소중한 것도 아닐 것이다. 두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렇게 냉장고는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그렇게 냉장고는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냉장' 으로 인해 부패가 잠깐 멈춘 세계가. 그리고 다시 냉장고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카스테라를 발견한다. 카스테라는 부패의 진행을 멈추고 정갈하게 재구성되고 응축된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분명 이상적이거나, 유토피아 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의 표면 모습만 변한 것일 뿐 세계 그 자체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먹으며 달콤함을 느끼고, 모든 것을 용서 할 수 있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용서라는 말은 잘못됨을 전제하고 있다. 세계는 잘못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미화시키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이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스테이지 23은 사람을 능력, 실적 유무로 판단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로만 취급하는 현실이다. 손팀장은 이런 스테이지 23을 건너기 위해 에뮬레이터를 깔고 너구리 게임은 하지만 이는 번번이 막힌다. 스테이지 23을 이탈하려는 사람은 너구리광견병에 걸려 현실과 분리되고 낙오된다. 세상은 너구리이거나 너구리가 아니거나. 너구리이지만 아닌 척 하는 이 세 가지 종류의 사람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너구리였던(즐거움을 추구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상품화되는 것을 거부하는)과거가 아닌, 회사의 인턴생활을 하며, 스테이지에 진입하였다. 그는 부장과의 만남 속에서 스테이지 23을 경험하지만, 이를 묵묵히 견디어 낸다. 하지만 수치와 경멸의 감정을 감출 수는 없다. 이때 거대한 너구리가 이태리 타월을 들고 나타난다. 너구리는 모든 것을 지켜봤고, 또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너구리는 나를 의자에 앉혀 몇 년째 밀지 못했던 등을 밀어준다. 너구리가 등을 밀어주자 나는 점차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다. 그리고 너구리는 등밀기와 더불어 비누칠까지 해준다. 그것은 너무나 환상적 플레이였기에 나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한다. 인간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고 그 가치성의 유무로써만 사람들의 효용성을 논하는 사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너구리가 위로해 주는 것이다. 사회에서 ‘너구리’는 상품화가 되는 것을 포기한 이들 혹은 상품화가 되지 못한 이들로 치부되어 쓸모 없는 줄 알았던‘너구리’가 인간을 치유하는 본질적이고 인간적인 행위를 통해 가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나타난 너구리의 특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 눌 수 있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시대를 역행한다는 것이고, 경험, 실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변화에 잘 대처하고, 역할 분담에 능숙하다는 한 마디로 말해.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절히 적응하고 산다는 것이다. 오락에 빠져 살고, 너구리 광견병에 걸린 손 팀장과, B가 전자의 입장에 있다면, 나는 후자의 입장에 있다. 하지만, 너구리 광견병이나, 동물점에서 나온 너구리의의 운세도, 사람에 의해 규정된 너구리의 특징이다. 너구리의 본질이 아니다. 보여지는 행동에 의해 짐작할 뿐이다. 너구리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위로할 줄 아는 존재가 아닌가.)

-에뮬레이터는 손팀장에게 내가 너구리라는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깔아준 컴퓨터 연동 프로그램이다. 컴퓨터 사용시의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호환성을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된다. 흉내내다(emulate)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본래의 기능을 흉내내어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뜻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흉내를 통해 시스템을 이룬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나는 연로하고 병환이 든 노모와 힘 빠진 아버지와 사는 상고 학생이다. 그는 편의점, 주유소,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만의 산수를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린다. 열차와 열차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은, 흡사 세상의 모습과 같다. 언제나 흔들거리고, 한량의 정원은 180명이지만 400명이 타야하고, 나는 꾸역꾸역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얼굴을 지운 채 짐짝 밀어 넣듯 밀어 넣는다. 그 승객 중에는 아버지도 있다. 나는 처음엔 조금 망설이지만 곧 아버지도 화물이라도 되는 듯이 힘껏 민다. 그렇게 아버지는 출근을 한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겨울이 되자 따듯한 곳으로 떠나는 철새처럼 어딘가로 잠적한다. 병든 노모와 가난한 살림, 그리고 처자식을 남기고 속 편하게 사라진 것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도 나이다. 그 날도 역시 아버지를 밀어드리던 나에게 아버지는 말했었다. "잠깐만 다음 걸 타자" 그리고 살짝 몸을 뺐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모두가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몸을 싣는 지하철에서 스스로 한 발 물러 선 것이다. 세상의 말을 빌리자면, 낙오 된 것이다. 그리하여 얼떨결에 가장이 된 나는 어떻게든 집안의 문제들을 수습한다. 그리고 어느 봄날 나는 아버지단정한 양복을 입은 기린으로 변한 아버지를 만난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가 맞는지를 재차 확인하려 한다. 그러자 기린은 무관심한 잿빛 눈동자로 자신의 앞발을 내 손에 포개더니 천천히 이야기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기린 역시 너구리와 같이, 세상과는 맞지 않는, 느릿느릿 천천히 거니는 낙오된 존재이다. 이는 아버지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나는 기린에게서 아버지를 유추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라고 말하며 기린은 어떤 변명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수긍할 뿐이다. 의연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나서. 자신이 기린임을 밝힌다. 아버지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기린으로서의 삶을 택했고, 변했고, 기린이라고 떳떳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음은 아닐까나?

아, 하세요 펠리컨,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제대로 고립된 오리배가 한가로이 떠다니는 유원지 매표원인 나에게는 구조의 손길이 뻗쳐오지 않는다.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고, 여전히 나와 유원지는 중심으로부터 32킬로 털어져 있으며, 역시 중심으로부터 32킬로 떨어져 사회적 친밀감에서 실패한 고립된 인간들이 이따금 찾아와 오리 배 안에서 펑펑 울거나, 신문을 펴들고 자살하거나 한다, 다시 말해 구조의 손길은 적어도 32킬로미터 떨어진 중심부에서 오지 않는다. 주변부의 사람들은 주변부에서 떠돌다, 사라 질 뿐이다. 사장도 나도, 어떤 구조의 손길도 없이 위기에 직면한 채 있었다. 그 때 나타났다. 오리 배 세계시민연합이. 그들은 오리 배를 타고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꾸려간다. 오리 배는 이렇게 사회 저층, 소외 받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오리배를 타고 세계 여러 나라를 찾아 떠돌아다니며, 이곳에서는 메이저가, 저곳에서는 마이너가 되 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절대적 희망일 수도 없거니와 절대적 대안도 되지 못한 다는 생각이 든다. '나'난 그걸 알기에 오리 배에 올라타지 않는다. 나는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지만 나대로의 삶을 살아갈 새로운 궁리를 하며 산다.

이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의 소외자들이자 권력의 바깥에 위치한 마이너리티들이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살아남으며 '성장' 하는 모습을 다룬다. 하지만 정말 성장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묻혀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일까? 카스테라에서 단맛만을 느끼는 것은 세상의 단맛만을 보며 살겠다는 또 하나의 도피는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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